Al Jazeera, 2025. 02. 14
[호스트]: 프레이저 당신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다중의 위기들을 서로 독립적이고 분리된 개별적인 위기들로 이해해서는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구가 불타고 있는 것, 경찰이 길거리에서 흑인들을 살해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단기적인 일자리를 두고 갈아타는 일이 지금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우연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협은 무엇이고, 그것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나요?
[낸시 프레이저]: 저는 이것이 사회 질서 전체, 나아가 우리 문명 전체가 처한 ‘일반 위기(general crisis)’라고 생각합니다. 즉, 경제적 위기나 정치적 위기 같은 ‘체계별 위기(sectoral crisis)’와는 반대로, 그것들이 지금의 ‘일반 위기’를 구성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와 다른 위기들도 존재한다는 거죠. 사회적 재생산, 또는 가족과 돌봄의 위기, 인종적 억압과 부정의, 제국주의적 억압의 위기, 생태의 위기와 같은 것들, 이런 위기는 동시에 벌어지고 있고, 이것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바로 그 점이 지금의 상황을 ‘일반 위기’로 만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이 위기들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가? 혹은 모두 연관되어 있고, 하나의 사회 시스템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 저는 후자가 맞다고 믿어요. 몹시 비이성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왜곡된 하나의 사회 시스템이 있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체계적인 이유에서 생태 위기, 금융 위기, 생계 위기, 정치적 패권과 지정학적 헤게모니의 위기를 동시에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아주 위험한 순간입니다. 이런 위기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드물어요. 늘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아마 세네번 정도? 자본주의의 근대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 겁니다. 아, 제가 방금 답을 말해버렸네요. 자본주의에서요! (웃음) 바로 그 하나의 사회 시스템이 자본주의 입니다.
[호스트]: 그러니까요. 그런데 자본주의가 이런 다중 위기의 단일한 원인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단순한 것일까요?
[낸시 프레이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본주의가 단일한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건 자본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본주의를 경제 체계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경제가 모든 것을 추동한다고 가정하게 되는 것이고, 그건 경제 결정론이겠죠. 그건 문제적입니다.
저는 자본주의가 총체적인 사회 시스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 시스템은, 경제를 정치 체계로부터, 자연으로부터, 가족과 사회 재생산으로부터, 지정학으로부터 제도적으로 분리합니다. 문제는 경제가 이 모든 것[자본주의적 경제의 배경조건]을 포식하도록 허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돌봄 노동, 정치 역량, 자연 따위의 것들을요. 사실 허용하는 걸 넘어서 이 사회 시스템은 거대 투자자와 기업들이 이 부와 에너지의 원천을 마음껏 취하도록 장려합니다. 마음껏 가져가도록 하면서, 그들이 파괴한 것을 복구하거나 그들이 가져간 것을 보충할 책임은 전혀, 한개의 책임도 지우지 않습니다. 제가 왜곡되었다(perverse)고 말한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아주 고약하고 왜곡된 체계죠.
[호스트]: 그건 <Cannibal Capitalism>의 제목을 설명하네요. 어떻게 지금의 시스템이 민주주의, 돌봄, 그리고 지구를 포식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뭔지 다루는 책이죠. 그런데 제가 생각했을 때 식인(cannibal)은 도발적인 표현입니다. 이 용어는 긴, 인종차별적인 역사를 갖고 있잖아요. 유럽의 식민주의 세력이 피식민 집단을 비하하고 비인간화하는데 동원되었던 용어죠. 특히 아프리카 흑인 인구를 연상시킵니다. 당신은 이 용어를 좀 다르게 사용하는 것 같아요. 애초에 비하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취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을 비판하려고 사용하고 있죠. 왜 이 용어를 선택하셨나요?
[낸시 프레이저]: 판을 뒤엎어서, 식인종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누가 진짜 식인종인지 보자는 거죠. 바로 거대 투자자, 거대 기업, 그리고 그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정치적 하수인들이라는 겁니다. 이 주체들은 노동하는 사람들의 부, 건강, 에너지, 그리고 역량을 전 지구적으로 빨아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은 자본가 계급에 의해서 식인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종의 맑스주의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저는 자본주의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자본과 자연, 돌봄 노동, 가족, 정치 사이의 관계를 국내, 국제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고려하자는 겁니다.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 체계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이 모든 다른 영역들을, 강력한 경제적 행위자들의 자율성에 맡겨버리는 사회 시스템입니다.
[호스트]: 정치적인 부분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보자면,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반대 투표를 하는 것뿐이라고 말할 겁니다. 세계의 '일론 머스크화'에 반대 투표를 하고, 기업들이 충분한 세금을 낸다는 생각에 반대 투표를 하고, 부유층이 자본이득(Capital Gains)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반대 투표를 하는 거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모든 것들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하는 걸로 왜 충분하지 않을까요?
[낸시 프레이저]: 이건 정말 큰 역설입니다. 왜냐하면 보통선거권이 도입되었을 때, 모두가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공평하게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 뉴딜 시대 같은 시기에는 투표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 체계의 또다른 측면입니다. 정치적 위기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거버넌스 문제[공적 권력이 자본의 이익에 종속되어 민주적 자기결정 능력이 약화되는 구조적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헤게모니 문제[신자유주의적 ‘상식’의 붕괴로 인한 의식의 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헤게모니 문제는 그러니까 의식의 문제, 상식의 문제,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세계관의 위기입니다.
이 인터뷰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알듯이 우리는 기존에 세계를 지배했던 상식, 즉 신자유주의 제도권 정당들이 구축한 지배적 상식(the ruling common sense)[진보적 신자유주의 이념]으로부터 놀라운 균열과 이동(defection)을 경험해왔습니다. 그에 맞서 거대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한때 이런 반란들은 해방적이고 좌파적 흐름을 품고 있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형태의 우파 반란과 포퓰리즘이 지배적이며, 이것들은 결코 해방적이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어요.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신들의 일자리가 충분한 수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 원하는 방식으로 자녀를 키울 시간이 없다는 사실 등, 이 모든 것에 대해 반응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단은 매우 잘못되어 있습니다.
[호스트]: 바로 그 진단에 대해 얘기해보죠. 당신이 짚어내듯이, 사람들은 정부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문제들이 기존 체제나 기존 정치인들에 의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합니다. 이탈리아든, 헝가리든, 인도든 아니면 바로 여기 미국에서든, 우파 권위주의적 모델을요. 그들은 왜 이런 선택을 할까요? 왜 이런 선택지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걸까요?
[낸시 프레이저]: 저는 미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므로 일단 미국에 좀 더 집중한다면, 2016년 민주당 내 버니 샌더스 진영을 구축하려던 시도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에게 대안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대항 담론이 없어요.
지금의 지배적 담론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정교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멕시코 강간범들, 무슬림들, 트랜스젠더들, 불법 이민자들, 딥스테이트(deep state), 워키즘(wokeism)이 문제라는 거죠. 이 설명들이 아무리 비논리적일지라도, 모든 사람은 아니어도 미국 유권자의 상당 부분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항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 있나요?
문제는, 민주당의 지배적 세력이 지금까지 세 번의 선거 사이클 동안, 끔찍한 일을 정확히 동일하게 반복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말이 맞습니다, 심각한 문제와 위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그 진짜 원인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오, 트럼프가 방금 뭐라고 했는지 보세요, 트럼프가 방금 뭘 했는지 보세요"라고만 하는 거죠.
문제의 큰 부분은 대안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트럼프나 모디 같은 인물의 카리스마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진정성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정말로 해낼 것 같은, 당신을 위해 싸울 것 같은 어떤 기운을 느끼게 하죠.
[호스트]: 좌파는, 단순히 자유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실제 좌파들은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것들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대안을 구축하고 있나요?
[낸시 프레이저]: 우리가 실제로 좌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건, 인상적이긴 하지만 파편화되어 있는, 민주화와 해방을 추구하는 일련의 사회적 움직임과 투쟁들 뿐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미투 운동, BLM 운동, 급진적 생태 운동, 그리고 노동조합주의를 부활시키고 조직화되지 않은 노동자를 조직화하려는 흥미롭고 중요한 노력들이 포함되죠.
제 생각에 이것들은 우리가 ‘역사적 또는 헤게모니적 블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구성하는 잠재적 단초들입니다. 다시 말해 이는 이론적으로, 한편으로는 민주당 내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진영에, 다른 한편으로는 MAGA와 전 세계의 유사한 흐름들에 대항하여, 신뢰할 만한 대안 세력으로서 자신을 제시할 수 있는 폭넓은 정치적 연합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파편화된 좌파적 투쟁들을 하나의 대항 담론으로, 그람시적 의미에서 하나의 헤게모니적 블록으로 구축해 내기 위해서는], 이 정치 세력의 다양한 잠재적 구성 요소들이 인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마주한 위기들의 근원에는, 하나의 동일한 사회 시스템이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바이기도 합니다.
제가 시도해온 일은 바로 이 점들을 서로 연결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만약 우리 모두가 바로 이 약탈적인 사회 체계를 통해 서로 왜곡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누가 진정한 우리 편이며 누가 우리의 진짜 적인지에 대해 새로운 감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 운동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자유주의–신자유주의적 ‘진보 세력’에 의해 포섭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호스트]: 당신이 그런 점을 훌륭하게 연결해 내는 예시들을 살펴보면,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무급 돌봄 노동, 가사노동, 육아, 노인 돌봄을 어떻게 착취해왔는지 보여줍니다. 1980년대에 여성들이 노동 시장에 참여하도록 장려되면서, 돌봄 노동은 종종 더 가난한 나라의 이주 노동자들에게 외주 맡겨졌습니다. 그 결과가 당신이 말하는 '돌봄 위기(care crunch)'인데요. 돌봄 위기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낸시 프레이저]: 네,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수렴하는 지점이 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첫째, 아내가 전업 주부이자 어머니, 돌봄 제공자가 될 수 있도록 남성 노동자가 온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한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오래된 가족 임금(family wage) 이상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노조 공격, 높은 임금을 주는 제조업 일자리의 외주화, 저임금 불안정 서비스 노동의 도입과 관련이 있죠. 40년대, 50년대와는 전혀 다른 경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둘째,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의 일환으로서 공공 사회 서비스가 축소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시간 압박(time crunch)’이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임금이 너무 낮아서 육아 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동시에, 공공 유치원 같은 제도가 축소되고 있으며, 육아를 스스로 할 시간도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다른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 교육받고 부유한, 전문-관리계급(professional-managerial class) 계급 여성들이 의사, 변호사, 임원이 되고 있어요. 매우 까다롭고 긴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일이지만, 그들은 그 시간적인 공백을 메울 사람을 고용할 경제적 여유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주로 농업 노동이나 식당 일 등을 위해 이민자들을 끌어들인 반면 이제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가사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인 요양원이나 재활 센터 같은 영리 기관에서든, 개인 가정에서든 말이죠.
[호스트]: 이것은 지구 남반구의 노동 착취가 아니라, 오히려 이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식으로 드러납니다. 더이상 여성들은 가정 영역에 묶일 필요 없이, CEO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표상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린 인(lean-in)’하고 있고, 여러 면에서 이것은 페미니즘으로 불립니다.
[낸시 프레이저]: 정확합니다.
[호스트]: 하지만 이것과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낸시 프레이저]: 완전히 연결되어 있죠. 남반구 출신 유색인종 이주 여성들에 대한 착취나 수탈 없이는, 북반구의 전문-관리계급 여성의 소위 “해방”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호스트]: 맞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가임기 직원들에게 난자 냉동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예를 들었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해방적인 것으로 봅니다. 이제 누군가가 원한다면 인생 후반에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거죠. 하지만 당신은 대기업들이 이를 일반적으로 제공하게 된 것을 일종의 전략으로, "당신은 40대, 50대, 심지어 60대에도 아이를 가질 수 있으니, 당신이 가장 생산적인 시기를 우리에게 바치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보는데, 이는 매우 다른 사고방식입니다.
[낸시 프레이저]: 그것은 바로 이 돌봄 위기의 증상입니다. 여성들은 예전 사람들이 그랬던 나이에 아이를 가질 여유가 없다고 느끼고, 이러한 기술적 극단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다른 예시는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는 겁니다. 그래야 일할 수 있고, 그러면 여전히 아이에게 소위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정말 모유 수유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것은 미국의 경우인데, 우리는 사회 시스템의 토대를 뿌리부터 뒤바꿔야 하는 문제에 대해 언제나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호스트]: 당신은 또한 자본주의가 대체로 지구를 약탈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죠. 이것은 환경 파괴로 이어졌고, 최근 LA에서는 산불로 적어도 29명이 죽었습니다. 2024년은 기록상 가장 더운 해였고, 지난 몇 년간 세계는 스페인의 재앙적인 홍수, 인도의 극심한 폭염, 동아시아 전역의 태풍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당신은 ‘생태사회주의’라고 이름붙인 반자본주의적 생태정치학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낸시 프레이저]: 그건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에 대한 수탈적(predatory) 관계가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다고, 자본주의에 너무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은 그저 착취를 위해 존재할 뿐이죠. 앞서 말했듯이, 자본이 이를 보충하거나 복구할 책임은 없습니다.
[호스트]: 하지만 이것이 사회주의적 맥락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보일까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기들을 작동시키려면 석유와 가스, 광물을 추출해야 하잖아요. 물론 다른 생산 양식이긴 하지만요.
[낸시 프레이저]: 맞습니다. 이것은 정말 흥미롭지만 복잡한 질문입니다. 핵심은 자본주의에서는 자연을 파괴할 동기가 아주 깊숙이 내장되어 있다(hardwire)는 겁니다. 사회주의적 맥락에서 그것은 그정도로 깊숙이 내장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도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화석 경로를 따랐고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들이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답은 탈화석화입니다. 우리는 재생 에너지, 특히 태양열과 풍력, 수력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합니다. 우리는 석유, 천연가스, 프래킹(fracking) 등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한 그런 광범위한 정치 연합을 구축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점들을 연결하고 그 움직임을 반자본주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동시에 녹색이고, 반인종주의적이고, 친노조와 친노동자적이며, 이윤이 아닌 사람을 위한 것일 겁니다.
우리가 맞서고 있는 권력은 거대합니다. 모든 ‘머스크들’과 에너지 산업들, 자동차 제조업, 은행들, 실리콘밸리를 합쳐보세요. 이것은 거대한 권력 덩어리입니다. 거대한 대항 권력 없이는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우 큰 연합체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종류의 연합체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정확히 식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제 주장은, 무한한 부의 축적과 포식(predation)의 동학을 무력화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급하고 다양한 문제들 중 어떤 것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호스트]: 포스트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낙관적인가요?
[낸시 프레이저]: 저는 주기적으로 낙관과 비관을 오갑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낙관적이었죠. 2016년을 전후한 여러 움직임들, 2011년의 Occupy 운동, 아랍의 봄 같은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엄청난 해방의 잠재력을 본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들은 점차 흐지부지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왜곡되었죠. 또한, 스페인이나 그리스처럼 Occupy 조류의 운동을 정당의 형태로 전환하려 한 시도들, 예컨대 시리자(SYRIZA)나 포데모스(Podemos) 같은 경우도 결국 흐지부지되거나 체제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트럼프가 두 번째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의 시점이기도 하죠. 우리는 마땅한 대안이 없고, 이는 저를 극도로 분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분위기에 전적으로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늘 상승과 하강의 주기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것을 위한 강력한 움직임이 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특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깊이와 헌신을 보며 큰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 운동이 잔악스럽게 탄압되고 짓밟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제 삶을 통틀어 최악의 경험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가져 오죠.
그렇지만, 여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그람시의 말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 이건 중요합니다. 비관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너무 많지만, 우리는 어쨌든 용기를 가져야 하니까요.
[호스트]: 감사합니다.